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7월)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2026.7.29.
1요한 4,7-16 요한 11,19-27
마르타의 고백은 처음부터 믿음의 고백은 아니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마르타는 처음에 라자로가 살아 있을 때 와주지 않으신 예수님께 원망 섞인 인사를 한다. 사람을 보내어 자기 오빠가 중병으로 앓고 있다고 전했는데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아주 절친했던 라자로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늑장을 부리며 달려오지 않으셨다. 라자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셨고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 후에야 베타니아에 나타나셨으니 무려 6일이나 지체하신 셈이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한 마르타의 의지하는 마음은 크다. 그렇기에 슬픔 중에서도 마르타는 늦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마중하러 나간 것이 아닐까? 마르타는 행동하는 신앙인이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는 표현은 마르타의 예수님을 향한 친구로서의 각별한 존경과 사랑이 얼마나 큰지 드러내는 말이다. 존경과 사랑이 크지만, 동시에 그러나 서운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마르타의 마음속에는 예수님께서 지금이라도 무엇인가 이루어내실 수 있다는 한 가닥의 희망은 있다. 다만 마르타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다고 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다른 데서 이루신 기적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데 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런 차원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신다. 머리로 알고 수긍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절대적인 신뢰로 받아들이고 의탁하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신비스런 능력이다.
우리 인간에게 여러 인식능력이 있다. 오감에 의한 인지력이 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그러나 이런 감각적 능력 말고, 한 단계 높은 능력, 이성적 논리에 의한 이해력이 있다. 다섯에 다섯을 더하면 10이 되는 것을 계산해 낼 줄 안다. 그런데 이런 이성적 이해력보다 더 높은 차원의 능력이 있다.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감각이나 이성만이 아니라 직감, 감성 등 인격과 인격 전체의 만남이고 소통이고, 교류이고 일치다.
예수님은 마르타를 향하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라는 황당한 물음을 던지셨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어떤 예외도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생명 자체이고, 당신을 믿으면 죽지 않고 산다고 하시고 그것을 믿느냐?’ 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말씀을 하셨다.
마르타는 하나 밖에 없는 오빠 라자로의 죽음으로 형언할 수 없는 큰 상실감과 고통에 짓눌리며 예수님께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엉뚱하게 당신이 바로 죽음을 넘어선 생명이요, 부활임을 믿을 수 있느냐고 하신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예수님은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지만, 예수님은 평소 당신을 존경하고 따르는 마르타에게 사랑하는 인격 대 인격으로 예수님 당신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도전하고 초대하신 것이다. 마르타는 이 예수님의 물으심에 ‘믿습니다.’하고 믿음을 고백한다. 마르타의 이런 믿음의 고백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마르타의 전적인 존경과 사랑의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대대적인 박해하에서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순교로 목숨을 잃으면서도 부활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버티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온갖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사도들의 인격에 대한 존경과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이상훈 작가라는 분이 쓴 ‘백서,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황사영과 그 부인 정명련(난주) 마리아, 그리고 조선 천주교회 초창기 순교자들의 역사를 토대로 작가 나름대로 당시 그분들이 사신 생애를 인간적으로 조명하며 쓰신 글이었다. 소설이지만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그분들이 겪어가셨을 엄청난 환난의 나날들을 소설가의 상상과 추정으로 풀어나간 아주 감동적인 저서여서 두꺼운 책인데도 완독하는데 며칠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