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10월)

센터알리미 0 5 15:53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2026.10.28

에페소 2,19-22 루카 6,12-19

 

사도들은 예수님이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뽑으신 사람들이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신 다음에야 이들을 뽑으셨다는 것은 사도들의 소임과 삶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님을 예고한다. 이 열둘 중에는 어부도 있고, 이방 지역 출신도 있고, 세리도 있고,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도 있고, 의심 많은 토마스도 있고,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다. 이들 중 아무도 사실 전문적인 종교적 양성의 배경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자질이나 자격이 있다고 볼 증거가 하나도 없다. 사상이나 성향도 각양각색이다.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어째서 예수님은 이런 오합지졸을 당신의 사도로 뽑으셨을까? 군대나 기업이나 사회의 어떤 단체나 능력 있는 인재를 확보하려면 학벌이나 경력, 성격이나 출신배경을 잘 따지고 처음부터 스크리닝을 잘해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엄선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열두 사도들은 전혀 그런 과정으로 뽑힌 사람들이 아니다.

 

열두 제자들 사이에 특별한 공통점이 있나 하고 찾아봐도 별로 없다. 출신배경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온순한 사람, 격한 사람, 열정적인 사람, 냉철한 사람, 단순한 사람, 의심 많은 사람 등 공통 분모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이런 십인십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모여 서로 다른 점을 뛰어넘고 한 가족으로 연대하고 일치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의도적으로 뽑으신 것이 아닐까? 교회는 결코 엘리트들의 집단이 아니다.

 

그러니까 민족도 다르고 출신 배경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사회 계층도 다른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처음부터 같이 어울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모난 돌들의 집단이다. 돌멩이들 보면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르게 생겼다. 이 다르게 생긴 돌들, 어떤 놈은 동그랗고, 어떤 놈은 길쭉하고, 어떤 놈은 울퉁불퉁하고 어떤 놈은 매끌매끌하다. 이렇게 서로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 돌멩이들이 부대끼면서 서로 모난 데가 깎여나가고 둥글둥글해져 기계 속의 베아링처럼 마찰열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원활히 잘 돌아가도록 초대하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보았듯이 초대교회의 기초가 놓아지는 과정을 돌아보면, 베드로와 바오로가 다르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다르고, 남자 제자들과 여자 제자들이 다르고,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티격태격 다투고 욕하고, 비판하고 갈라서기도 했지만, 모퉁잇돌인 예수님께 연결되면서 예수님의 시각으로 조금씩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양보하고 협력하면서 사랑으로 교회를 쌓아 올려간 것 같다.

 

교구 사제단도 마찬가지다. 신학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출신 도시도 다르고, 다닌 학교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취미도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책 읽고 공부에만 매달리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놀기 좋아하고 운동이나 잡기에 능한 사람도 있다. 생각이나 사고방식도 어떤 학생은 자유분방한데 어떤 학생은 별 융통성이 없거나 보수적이기도 하다. 이런 십인십색의 사람들이 30대에서 80대까지 할아버지 세대와 손자 세대가 한 교구의 사제단을 이루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사회단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교회니까 가능한 일이다.

 

사제들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분은 사업적인 탈렌트가 있어서 이시돌 목장을 비롯한 여러 사업체를 만들어내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유튜브 통해서 대중 강연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청국장을 팔아서 대단한 수익을 남기는 재능을 발휘하는 분도 있다. 또 어떤 분은 사회의 불의를 볼 때 상대가 누구든 열화와 같은 분노를 쏟아내고 고발하고 꾸짖는 분도 계셨고, 또 어떤 분은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대단한 영적인 에너지를 갖고 끊임없이 가르치고 저술 활동을 계속 이어가시는 분도 계신다. 하느님은 그런 다양한 재목들을 적절히 활용하시고 다양한 열매를 맺게 하시며 교회를 오늘날까지 성장하게 해주셨다.

 

강정을 다녀간 평화 활동가들도 다양했다. 영화감독도 계셨고, 연극 연출가도 계셨고, 작가도 계셨고, 시인도 계셨고, 음악가도 계셨고, 화가도 계셨다. 그런 의미에서 강정도 분명히 훌륭한 교회의 모습을 갖춘 현장이었다. 여러 나라 사람이 다녀갔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모두 다녀갔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바람에 떠밀려 하느님의 정의에 목마르고 배고파서 이 나라 최남단까지 찾아온 이들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사랑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바로 모퉁잇돌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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