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강우일 주교님 강정생명평화미사(2025년 6월)

센터알리미 0 94 06.25 16:25

강우일 주교님이 2025년 6월 26일에 강정생명평화천막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아래는 강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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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25.6.25.

신명기 30,1-5 에페소 4,29 - 5,2 마태오 18,19-22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하자, 한반도는 미소 양국이 반토막 내어 점령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스스로 싸워서 독립이나 해방을 맞이한 것이 아니다. 해방 후 3년간의 유예기간 있었고, 1919년부터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임시정부가 중국에 망명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힘으로 정부 수립을 하지 못하였다. 북쪽에는 소련이 내세운 김일성이 정권을 잡았고, 남쪽에는 미국에 있다가 갑자기 귀국한 이승만이 정권을 잡았다. 이승만도 김일성도 미국과 소련이 내세운 인물들이었다.

 

북쪽은 사회주의자들의 주도로 무산 계층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했고, 남쪽은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사실은 반공 사상이 주축이 되는 독재국가가 되었다. 그 후 김일성이 남한을 미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백성의 생명을 빼앗았고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북에서는 자기들의 공산체제에 조금이라도 색깔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철저히 숙청하고, 남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북측과 가까운 기색이 보이기만 하면 여지없이 제거하는 반공주의가 나라를 완전히 장악하고, 사찰과 억압으로 국민들을 옴짝달싹 못하는 경직된 경찰국가가 들어섰다.

 

지금까지도 좌파라면 마치 지구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인들처럼, 악마화 하고 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대결과 미움의 관계가 고착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힘센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멋대로 지도상에 연필로 그어버린 38선 때문에 왜 우리가 한민족 한겨레이면서 서로 원수 보듯 하고 적대하는 고질병에 걸려버렸을까? 우리는 이 고질병에서 털고 일어나야 한다. 소연방이 해체된 후 공산주의의 원조 국가인 러시아와도 외교관계를 회복했고 러시아인들도 아무 제한 없이 한국에 와서 구경하고 우리도 러시아로 여행 간다. 6.25 때 인해전술로 우리 땅을 침범하고 싸웠던 중국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서로 수입 수출을 통해 엄청난 교역을 추진하고 자유롭게 관광도 하고 운동도 하고 유학생도 오고 간다. 그런데 어째서 원래 한 민족이고 한 언어를 사용하고, 한 핏줄이면서 계속 의심하고 미워하고 경계하고 저주하는 사이로 남아 있을까?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오셨을 때, 서울 명동성당에서 마지막으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지내며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을 인용하였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옛날 랍비들은 세 번 용서하면 할 만큼 한 것으로 간주해 주었다. 그러니 베드로는 일곱 번이라고 하면 예수님도 납득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교종께서는 이 예수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7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을 넘어서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신다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합니다.’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최근 세계정세는 아주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일방적인 무력행사를 거침없이 퍼부어 왔고, 최근에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뒤를 봐주어 온 이란을 포격하고 이에 맞서 이란은 이스라엘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또 며칠 전에는 미국이 이란의 원자력 시설 지점을 집중 타격하자, 이란이 즉시 이스라엘을 향해 탄도 미사일을 줄줄이 날려 보냈다. 온 세상이 불안과 긴장 상태에 빠져들었고 기름 값이 오르고 경제적으로 위험신호가 자꾸 울린다. 이런 전쟁 행위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이스라엘과 이란이 잠정적으로 휴전에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과연 평화가 정착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거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들과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향해서도 일본을 향해서도 지금의 배 이상으로 국방예산을 늘려 미군의 주둔 비용을 책임지라고 압력을 가한다. 지금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국방예산도 61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이 125조 원이니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 쓰는 금액의 반을 전쟁 준비에 쓰고 있다. 사람 살리는 일에 사용하는 액수의 반을 동시에 사람 죽이기 위한 일에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순되고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을까?

레오 14세 교종은 최근 현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쟁터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에 교회의 마음은 찢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익숙해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의 유혹을 거부해야 합니다.“

레오 교종은 선임 교종들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호소하였다. "전쟁은 언제나 패배입니다. 평화는 아무것도 잃지 않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주의적 독선에서 벗어나 죄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죽이는 반인륜적 전쟁에서 발을 빼는 참된 용기를 얻게 되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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